다리실교우촌


  • -천호성지의 역사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천호산에 들어온 교우들이 한 신자 집에 공소를 설치하여 신앙교육과 기도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천호마을은 본래 고흥 유씨 소유의 종산이며 척박한 땅이었다. 교우들은 이 척박한 땅을 피땀을 흘려 일구었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형제들의 어려운 사정을 서로 도우면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래서 한 신자는 <모두가 성인이 아니고서는 못살 수도원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술회하였다.

    -1909년 되재본당 메르몽(목세영) 신부님을 비롯하여 되재본당과 천호공소회장들 12명이 합심하여 고흥 유씨로부터 150정보에 이르는 천호일대의 땅을 매입하였다. 1941년 8월 150정보 중 75정보는 각자 분양하고, 나머지 75정보는 7명(목세영신부, 김여선, 박준호, 이만보, 민갑룡, 장정운, 김현구)이 교회에 봉헌하여 순교자들의 성지로 보존하였다.


  • -전주교구에서 제일 먼저 본당이 세워진 것은 1889년 전주본당과 수류본당의 전신인 배재본당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앞서 1877년 11월 가을판공이 시작되기 전, 불란서 선교사 블랑(Blanc) 신부님이 천호 인근 어름골에 정착하여 대략 5년 정도 계셨다. 이로써 본당이라는 명칭만 없었지 실제 오늘날 <준본당>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블랑신부님은 어름골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다리실에도 계셨으며 이후 리우빌(Liouville)신부님이 5년간, 라프르카드신부님이 2년간 계시다가 빼재(되재)로 거처를 옮기셨다. 따라서 천호는 명실공히 전주교구는 물론 호남에서 가장 먼저 본당이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호남교회사 연구소. 김진소 신부>

    -1913년 기와로 된 강당과 신부 침실이 건립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 공소건물을 새로 지어 봉헌식을 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노후로 2003년 천호공소 경당의 철거 및 신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5년 공소건물을 철거하였으며, 2006년 기공식을 갖고 공사에 들어가 오늘날 완공에 이르렀다.


  • -새경당 건립은 김태술(아오스팅), 박숙자(데레사) 부부의 공소발전기금 봉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천호마을 36세대, 130여명 공소신자들의 땀과 정성이 스며있는 모금으로 228평의 대지 위에 경당 39평, 사제관 22평의 전통한옥으로 완공되어 2008년 5월 17일 교구장 이병호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전주교구는 천호공동체가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한마음으로 성지를 보존하고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2011년 1월에 고산본당에 소속되었던 천호공소를 준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이로써 천호는 130여년 만에 호남의 첫 본당 사목지로서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